오십육일째 날
예수 진짜 부활한 증거 있나?
- ♣ : 잘 잤냐?
- ♧ : 아니요. 꿈자리가 좀 뒤숭숭했어요.
- ♣ : 왜? 무슨 일이 있었냐?
- ♧ : 아니, 어제 당신과 대화한 내용이 저에게는 좀 파격적이었거든요.
- ♣ : 어? 뭐가 파격적이냐?
- ♧ : 사실 제가 당신과 대화를 시작할 때는 유일신 (唯一神 ) 사상이나, 다신 (多神) 사상에 관한 개념이 별로 없었거든요.
- ♣ : 그런데?
- ♧ : 그런데 당신과 대화하다 보니 종교에는 유일신 (唯一神 ) 사상과, 다신 (多神) 사상이 있으며, 결국은 유일신 사상이 우선이고, 중심이라는 결론인데요?
- ♣ : 그런데?
- ♧ : 그리고 지금의 유일신 사상 중심에는 신약시대를 출발시킨 예수가 있다는 거죠.
- ♣ : 그래, 그렇지.
- ♧ : 그런데 사실 저는 예수의 존재에 대해서 그렇게 신빙성을 가지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근래에 출판된 여러 가지 책을 보면, 예수는 진짜 죽지 않았고, 기절했다가 깨어나 프랑스로 도망쳐 아이까지 낳고 잘 살았고, 그 후손까지 있다는 둥, 또는 인도로 도망쳐서 전도하다가 죽었다는둥, 하여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뒤죽박죽이거든요.
- ♣ : 그래, 그런 책들이 여러 가지 출판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 ♧ : 그런데 당신은 예수가 분명히 죽었다가 부활한 것으로 말씀하시니까 새삼 헷갈리는 거 예요. 더구나 당신이나, 신나이 신이나, 외계인들이나, 예수에 대해 모두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니까요?
- ♣ : 오! 그러니까 예수가 진짜 죽고, 부활한 확실한 근거가 있냐는 거구나?
- ♧ : 그렇지요. 당신의 말씀과 같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앎을 키워오 시는 과정이고, 그 중심에 예수가 있다면, 부활을 비롯한 예수의 실체부터 확인해야 납 득이 될 것 같아서요.
- ♣ : 오, 그래서 꿈자리가 뒤숭숭했다는 거냐?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 ♧ : 그럼요. 확실해야 확신을 갖고 제 인생관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 ♣ : 네 말을 듣고 보니 당연하고 맞는 말인데, 지금에 와서 2,000년 전에 죽어 부활한 예수를 어떻게 증명한다?
- ♧ : 제 생각엔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2,000년 전의 일인데 지금 입증할 자료가 있겠어요?
- ♣ : 그래? 그래도 나름대로 찾아보자.
- ① 우선 신나이 3권 150p를 보자.
- 닐: 그래서 제가 ‘죽기’ 전과 똑같은 사람으로 이승으로, 땅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고요? 신나이 신: 그렇다. 닐: 육신을 가지고요? 신나이 신: 너는 예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느냐?
- 닐: 들었죠. 하지만 전 예수가 아닙니다. 예수처럼 되겠다고 나서지도 않을 거고요.
- 신나이 신: 그가 “너희 역시 이런 일들, 아니 이보다 더 한 일들도 할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 ♧ : 그 구절이 어쨌다고요?
- ♣ : 잘 읽어봐라. 닐이 분명히 ‘죽기 전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냐?
- ♧ : 네, 그랬지요?
- ♣ : ‘죽기 전과 똑같은 사람’이란 곧 예수가 분명히 죽었다가 부활했기에 ‘죽기 전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며, 신나이 신은 분명히 그렇다고 답변했다. 닐의 질문은 예수가 분명히 죽었다가 죽기 전의 사람으로 부활했냐는 질문이었고, 신나이 신의 답변 역시 그렇다는 것으로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분명히 했다.
- ♧ : 신나이 신은 그랬군요.
- ♣ : 다음, ② 예수가 전도하고 다닐 때는 가족을 비롯한 친척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했으나, 신약성경 갈라디아 1장 19절에 보면, ‘주님의 동생 야고보’라는 말이 있으며, 유태인의 탈무드 연구가 요세프스의 저서 『유태인의 고대풍습제도』 제20권 9장 1항에 보면, 야고 보의 처형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동생 ’이라고 했으니, 예수의 동생에 서 순교자가 나왔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음, ③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가 부활 후 40일간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 제 자들이 처음에는 예수인지 알아보지 못하다가 느닷없이 알아보게 되곤 했음을 기록하 고 있다. 예수가 죽기 전에 살아서 전도하며 같이 다닐 때는 이런 기록이 없다가 이렇게 특별한 느낌을 제자들이 기록하게 된 것은 예수가 살아있었을 때와 나타날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 ♧ : 성경은 그냥 옛날이야기 같아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였는데 그렇게 자세히 나와 있어요?
- ♣ : 물론 별 의미 없는 것도 많지만, 그들은 충실히 기록하려고 노력했고, 충실히 기록됐다.
- ♧ : 어쨌든 신기해요. 그런 구절들이 있다는게.
- ♣ : 다음, ④ 예수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이미 예수와 유다의 출현,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나타난 의미를 예언한 구절이 구약성경 ‘스가랴’에 있다. 그 예언서에도 예수와 유다는 분명히 죽는 것으로 나온다.
- [ 참고 ]: 이 예언서 구절은 관주성경의 스가랴 11장입니다.
- 4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 해설: 잡힐 양 떼는 그 당시 하느님의 인류 앎 성장 섭리의 중심 이스라엘민족을 뜻하며.
- 5절: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도다.
- 6절: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 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 해설: 구약 말기의 사상적, 사회적 혼란 상황과 다가올 로마제국의 박해로 흩어질 이스라엘민 족에 관한 것이다.
- 7절: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 는 은총 (恩寵)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 (連絡)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 새.
- 해설: 로마제국의 박해로 흩어질 가련한 이스라엘민족에서 새 신약시대를 열 은총의 막대기 와 연락의 막대기가 나오니, 은총 (恩寵)의 막대기는 예수를 말함이고, 연락 (連絡)의 막대 기는 유태인 제관과 예수를 연락 (連絡)해주는 이스가리웃 유다를 말함.
- 8절: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해설: 마음에 들지 않아 끊은 세 목자란 구약 말기에 나타나 새 진리가 발을 딛게끔 길을 예 비한 드다, 갈릴리 유다, 세례 요한을 뜻한다.
- 9절: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해설: 새 시대의 길을 예비하던 그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하느님의 섭리가 아닌 그냥 正, 分, 合 원칙에 따라 흩어진다는 뜻.
- 10절: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 하였음이라.
- 해설: 은총의 막대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함은 그때까지 하느님과 유대인의 계약이 었던 구약을 폐기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
- 11절: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해설: 그날로 예수를 죽였으니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던(청종하던) 유태인들은 예수를 죽이는 것 이 하느님의 뜻인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며, 그래서 가련한 양들이라고 함.
- 12절: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용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30을 달아서 내 용가를 삼은지라.
- 해설: 유다가 은화 30량이 탐나서 예수를 판 것이 아님을 증거하는 구절이다. 유태인 제관들 이 예수를 만나게 해준 유다에게 수고비를 주겠다고 하자, 유다는 주고 싶으면 주고 주 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였다는 것으로서 이제까지 은화 30량이 탐나서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는 주장을 하느님께서 스갸라를 통하여 누명을 벗겨주시는 증거다. 이 당시 유다는 예수와 유태인 제관들이 살벌하고 급박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대립을 벗어나 대화로 풀 수 있게끔 예수와 유태인 제관들의 만남을 주선함이 어떻겠느 냐는 친구(아나니아)의 제의를 받고, 혹시나 급박한 이 상황을 서로 대화로 풀 수 있지 않 을까 하여 예수의 허락을 은밀히 받고 유태인 제관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던 것이다.
- 13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 로 내가 곧 그 은 30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 해설: 신약성경에 보면 유태인들이 예수를 결박해 가는 것을 보고 유다는 유태인들에게 배신 당한 것을 알고 유태인들에게서 받은 은화 30량을 유태인들에게 도로 던졌다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는 자기의 실수로 예수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자책감에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을 본 유태인들은 유다가 도로 던진 은화 30량으로 토기장이의 밭 을 사서 ‘유다’의 시체를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14절: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 (義)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해설: 결국은 연락의 역할을 맡은 ‘유다’도 목을 매어 자결하였으니, 이것은 신약 과정 출발에서 연락 (連絡) 역할을 한 막대기도 부러진 것이다. 이로써 구약시대(유다)가 끝나고 신약시 대(이스라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인류 앎 성장 섭리가 예수와 유다의 죽음 이후는 유태인이 아닌 신약시대 성도들로 이어짐을 나타낸 것이다. 이렇듯 예수와 유다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쓰인 구약성경 예언서 스갸랴에서도 예수와 유다의 죽음을 분명히 밝혔다.
- 어떠냐? 이 실감 나는 예언이 놀랍지 않냐?
- ♧ : 예? 성경에 이렇게 정확한 예언이 있단 말이에요?
- ♣ : 그렇다. 수백 년 후에 태어나 억울하게 죽을 유다의 행적과 예수의 죽음 과정을 실제로 기 록한 신약성경보다 더 실감 나게 현실적으로 예언하고 있지 않냐? 이렇듯 ‘예수’와 ‘유다’ 는 이미 수백 년 전에 각자 역할을 맡은 두 사람으로 태어나, 그때까지 이어진 구약시대 를 끝내고, 새로 열리는 신약시대에 각자의 역할을 맡을 것이 완전히 정해져 있었던 것이 며, 때가 되자 두 사람은 실체적으로 태어나 각자 맡은 죽음의 임무를 지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잘나고 잘하고, ‘유다’가 못나고 못함이 없다. 다만 각기 누가 맡아도 맡아야 할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다(연락)나 예수(은총)나 ‘똑같이 막대기로 비유해’ 똑같은 가치에 각자 맡은 역할만 다름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이것은 세상에 영 원히 태어나는 인간들 역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사항이고.
- ♧ : 와! 성경에 이렇게 정확한 예언이 있단 말이에요?
- ♣ : 그렇다. 이만한 증거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납득되냐?
- ♧ : 신빙성이 충분하네요. 그런데요?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이 있는데, 성경에 보면 아담에게 나타난 신(神)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여호와는 하느님이 아니고, 유 태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지역신이며, 결국 그렇다면 예수를 이끌어온 신 (神)은 지역신 (神) 일 뿐, 우주 자체인 무한 (0) 한 존재 하느님이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 ♣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구나? 그렇다면 그에 대한 답변도 있어야겠네? 신나이 2권 264p에 보면, 신나이 신은 ‘하늘에 있는 예수의 아버지’라고 했다. ① 예수의 아버지는 ‘하늘에 있는 神=하늘님=하느님’이지만, ② 신나이 신은 하늘에 있는 그(예 수의 아버지)도 아니고, ③ 하늘에 있는 그(神=하늘님)의 자녀도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왜냐하면, 신나이 신은 하늘 자체로서 무한(0)한 전체성(0) 신(神)인 창조주 하느님과 자 녀로서 뜻이 하나(合一) 된 ‘인과관계(개체구조 앎=情)’가 없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우주원칙인 二分法 正, 分, 合은 ‘인과관계(情=개체구조 앎의 성장)’이다. 물론 너희들 개개인의 부딪침도 ‘인과관계’이고.
- ♧ : 신나이 신이 창조주 하느님과 ‘인과관계 (情=개체구조 앎의 성장) ’가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인데요.
- ♣ : 우주의 모든 것은 하느님 자체이지만, 하느님과 부모와 자녀의 ‘인과관계 (情=개체구조 앎의 성장) 체험’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나이 신은 다신 (多神) 사상이어서 하느님의 창조목적을 몰라, 하느님과 부모 와 자녀의 ‘관계정립 (情=개체구조 앎의 성장)’이 안 돼 있어, ‘하늘에 있는 그(예수)의 아버지 ’ 라고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 ♧ : 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