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삼일째 날
신(神)과 합일(合一)에 있어서 가정의 의미
- ♧ : 저 나왔어요.
- ♣ : 오늘은 중요한 이야기이다.
- ♧ : 뭔 이야기인데요?
- ♣ : 너희가 하느님 (神)과 하나 (合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거다.
- ♧ : 그런 게 있어요?
- ♣ : 잘 들어라.
- ① 너희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장하고, ② 성인이 되면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③ 남녀가 가정을 꾸며 아이 낳고 살다가 때가 되면 저승 간다.
- ♧ : 네에.
- ♣ : 이 과정이 너희가 하느님과 같은 질(앎)이 되는 길이다.
- ♧ : 가정이 그런 거예요?
- ♣ : 너희는 ‘연인이나 부모의 사랑’에서 ‘조건 없는 진정한 전체성(0) 사랑’을 체험해, 너희 부모이며, 이성(異性)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경 이사야 1장 2절과 66장 13절과 시편 82장 6절과 97장 8절에 보면, 인 간을 하느님의 자녀(번식체)라 하였고, 성경 이사야 50장 1절과 54장 5~6절과 62장 4~5절에 보면, 하느님에게 있어서 인간은 이성 (異性)이라고 하였다. ① 하느님의 ‘창조목적’에 의해 인간이 탄생했기에, 하느님과 인간은 부모와 자녀 간이며, ② 남자와 여자는 같은 질이지만 구조가 상대적(分)이어서 이성(異性)이듯, 하느님과 인 간영혼은 같은 전체성(0) 체질이지만 구조가 무한(無限=0)과 유한(有限)으로 상대적(分) 이어서 이성(異性)이다. 그래서 너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은 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② 이성(異性)에 대한 사랑이 겹친 지극 (至極)한 사랑이다. 너희들이 삶에서 체험하겠지만, ① 뜻(목적)이 하나 된(合一) 자녀를 위해서는 너희 목숨이 아깝지 않고, ② 뜻(목적)이 하나 된(合一) 이성(異性)을 위해서는 너희 목숨이 아깝지 않다. 이렇게 목숨이 아깝지 않은 두 가지 사랑을 합한 것이, 뜻(목적)이 하나 (合一) 된 너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니 얼마나 대단하겠냐?
- ♧ : 그렇겠네요. 그런데 ‘뜻(목적)이 하나 (合一) 된’ 이라고 단서를 붙이시는 건 뭐예요?
- ♣ : 너희는 유전자(DNA)가 같아야 친부모이지만, 하느님과 너희는 앎의 질이 같아 뜻(목적) 이 같아야(뜻이 하나) 친자녀이다.
- ♧ : 그러면 앎의 질이 중요하네요?
- ♣ : 앎의 질이 다르면 다른 만큼 남남이지, 앎의 질이 같으면 같은 만큼 친자녀이며, 하느님과 너희의 생명력이며 존재 의미이고.
- ♧ : 그래서 하느님의 체질인 3위1체 正, 分, 合을 철저히 알아 하느님의 창조목적을 완전히 이해해야 (全知 ) 하는군요!
- ♣ :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 ♧ : 무섭네요.
- ♣ : 무섭기는, 당연한 것을. 너희는 태어나 성장하며 부모를 인식한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무 조건 주는 무한(0)한 1차적 사랑과, 자녀가 잘되기 바라며 여건에 따라 매도드는 2차적 사랑으로 ‘옳고(목적) 그름(도구)’을 배우고, 또 ‘부모의 뜻에 따라야 함을’ 인식(앎)해 부 모에 대한 존경심’이 자라난다.
- ♧ : 네에.
- ♣ : 그 자녀가 또 성인이 되어 이성 (異性)을 만나 사랑으로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① 그 남녀는 가정 (正=원인)이라는, ② 구성체 內의 부딪침 (分=과정)에서, ③ 개체구조로 인한 서로의 다름(한계= 合=결과=실체=현실)이 드러나고, 그 드러난 (合=결과) 다름이 기대치 (正=원인=목적)에 못 미치면 서로가 돌이키기 힘든 상황까지(헤어짐)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다름을 상대(分)의 개성과 앎이 나와 다름으로 인한 正, 分, 合에 의한 당연 한 결과임을 이해하여, 하느님의 몫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가 깨닫는 기회임을 알아 과정에 최선 (0) 을 다하면, 그 가정은 ‘하느님 (神)과 하나(合一) 된 깨달음(앎)의 마당 (場)’이 된다. 즉 연애 때는 서로가 상대에게 모든 초점을 맞춰주기에 ‘너 없으면 못살아.’가 된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면 둘의 초점은 가정을 유지하려는 같은 목적으로 바뀌게 되고, 그것은 서로의 개성과 앎과 여건이 달라 매번 부딪치게 돼, ‘너 없으면 못 살아가 어느새 너 때문에 못살아.’가 된다. 그래서 남녀가 가정을 이룬 후 상대(分)에게 해줄 수 있는 가 장 큰 선물은 상대가(分) 하느님 표상이기에 상대(分)의 뜻에 따라주는 것이고, 이 따라 줌은 전체 인류역사 흐름에서 내 몫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몫(퍼즐)에 최선(0)을 다하는 것의 표상이다. (무조건 잘해주면 지가 잘나서 그런 줄 알거나 버릇만 못돼지니까 깨우쳐 줘가면서.)
- ♧ : 아이고, 쉽지 않네요.
- ♣ : 그러다 둘의 자녀가 태어나면 가정의 의미는 또 달라진다. 서로의 번식체인 아이를 낳고 키워 보므로. ① 부모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번식체인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체험하며 앎이 성 장하고, ② 하느님께서 무지(無知)한 인류에게 앎을 키워오시며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체험하며 하느님(神)과 앎의 질의 질량이 같아진다.
- ♧ : 네, 이해가 됩니다.
- ♣ : 그러다가 아이에게 사춘기가 와 아이가 부모의 뜻과 다르게 나아갈 때의 노심초사와 애 통함으로, 자녀인 인간이 부모이신 하느님과 뜻이 다르게 나아가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노심초사하시며 애통해하시는지도 알게 되고, 그래서 자녀인 인간이 正, 分, 合을 철저 히 이해하여, 부모이신 하느님 (神)과 뜻(목적)이 하나 (合一)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자녀로서의 가장 큰 미덕 (美德=0=孝道)이다.
- ♧ : 네에.
- ♣ :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부부가 헤어지지 않고 화목한 것이다. 그 래서 화목한 늙으막의 부부를 보면 참으로 아름답게 (0=美) 보인(느낀)다. 그러나 부부가 서로의 개성과 앎이 다름 (分)을 이해 못해 결국 헤어지면 아직 미성년이어서 부모의 보 살핌이 필요한 자녀는 둘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에 큰 혼란이 와 “그럼 난 뭐야? 난 어쩌라고? ” 하며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된다. 자신이 태어나 존재하는 가정(小宇宙)이 해체되니, 그것은 아이에게 있어서 하늘(우주) 이 무너지는(해체되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이기에 아이는 가치관 의 정체성과 정서에 큰 혼란을 가져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정은 너희들이 하느님 (神)과 뜻(목적)이 하나 (合一) 되어, 하느님의 창조목적과 너 희들의 존재 의미를 찾는데 절대적이다.
- ♧ : 그렇군요.
- ♣ : 그래서 하느님은 구약성경 창세기 첫 머리에 아담과 이브를 1:1로 등장시킨 것이다.
- ♧ : 예? 하느님께서 성경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를 1:1로 등장시킨 게 가정을 의미한 거예요?
- ♣ : 그런데 너희는 불완전한 개체구조이기에 이성이나 배우자가 누군가와 外道를 하고 네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너희는 꼭 갚는 식이 우선이어서 당연히 치가 떨리며 응징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너희 모두는 무한(0)한 전체성(0) 하느님이 개체구조로 분화한 존 재여서 그 상대들도 곧 나이기에, 이해와 양보로 모두가 하나라는 무한(0)한 전체성(0)을 체험할 때, 인류사회는 하느님의 창조목적인 오로지 기쁨만이 흐르는 지상천국이 된다.
- ♧ : 에이, 그게 어디 쉬운가요?
- ♣ : 쉽지 않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잡은 고기 무조건 주는 1 차적 사랑은 쉽지만, 그 사랑을 바탕으로 온갖 지혜로 고기 잡는 방법을 매로 가르치는 2차적 사랑은 아프고 쉽지 않듯이. 또 너희가 개체구조이기에 꼭 갚는 식의 진리는 당연하고 쉽지만, 이해와 양보로 전체 성(0)을 체험하는 차선의 진리는 쉽지 않듯이. 이 상황 역시 너희 모두가 하나인 전체성 神임을 실체적으로 입증해 네 영혼이 무한히 확대되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그만한 절대 가치가 있다.
- ♧ : 그런데, ‘아이쿠!’ 소리가 절로 납니다.
- ♣ : 너희가 이런 2차적 사랑을 체험할 때! 영적 성숙은 차원이 달라지며, 그리곤 너 스스로가 보람과 긍지로 모두가 하나라는 전체성(0) 사랑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고 체험하게 된다.
- 남녀가 반드시 1:1로 가정을 구성하지 않아도 인류의 번식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성경 창세기에서 남녀를 1:1로 등장시킨 것은, 남녀가 1:1인 가정이야말로 너희가 감당하기 힘든 여러가지 부딪침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 ♧ : 예? 1:1의 가정이 우리가 감당하기 가장 어렵다고요?
- ♣ : 중국 오지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중 일부는 모계사회 (母係社會 )를 이루고 있으며, 그들 은 난교 (亂交)를 한다. 그들에게는 삼촌, 엄마, 이모 등의 단어는 있지만, 아버지라는 단 어는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란 의미가 아예 없기에, 그들은 제일 나이 많은 여자가 집 안의 가장 어른이며, 둥근 도넛 형태의 3층 집에 살며, 도적 등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출입구는 1층에 작은 문 하나뿐이다. 그리고 2, 3층에는 작은 방마다 창문이 하나 씩 있으며, 남자들은 1층의 반을 넓은 방으로 만들어 합숙하며, 나머지 반은 가축을 키 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릴 때는 엄마가 키우다가, 조금 크면 남녀를 분리해 합숙시키 다가, 여자가 초경을 하면 방을 예쁘게 꾸며 따로 준다. 초경 치른 여자는 그때부터 밖 에서 남자를 만나 마음에 들면, 해가 진 후 자기 방으로 초대하여 해가 뜨기 전까지 같 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다가 남자가 싫증 나 스스로 안 오면 그만이고, 여자가 싫증 나면 방문 밖에 나뭇잎을 달아 놓으면 남자에게 그만 오라는 표시이다. 그러다가 여자가 임 신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또 엄마가 키우고, 아버지는 자기 아이인지도 모르 고, 비록 안다고 해도 ‘인과관계’가 없다. 어떤 할머니에게 기자가 물었다. “그러면 할머니도 수없이 많은 남자를 만났겠군요?”라 고. 그 할머니는 상대한 남자의 숫자를 기억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부근에는 같은 형태의 도넛같이 둥근 3층 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며, 여자들은 농사도 짓고, 호수 에서 고기도 잡는데, 남자들은 여기저기 모여 빈둥거리고 논다. 왜냐하면, 모든 재산은 여자들의 것이고, 남자는 아무런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대답이 평생 을 같이 사는 부부의 비율이 그래도 10명에 1명은 된다고 한다.
- ♧ : 그런 데가 있어요?
- ♣ :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모계사회로 살고 있는 그들은 참으로 평화롭고 즐겁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들은 한 집안에 살고 있는 식구들이 모두 모이고, 삼촌이기에, 네것 내것이 없어 물질적 욕심이 없고, 또 자존심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이 없어 서로서로 도우며 오손도손 살더란다. 현대인들이 겪는 부딪침(갈등)은 남 남끼리의 자존심, 부부간의 상대에 대한 기대치, 모두가 상대적 비교 (分)로 인한 부딪침 (갈등)이며, 그것은 일부일처제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모계사회는 그만큼 상대적 비교나 서로 간 자존심으로 인한 갈등의 소지가 없다는 것이다.
- ♧ : 모계사회에서는 모두가 한 식구이니 별로 싸울 일이 없겠네요.
- ♣ : 1960년대에 중국의 홍위병들이 이 제도를 없애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그 제도를 고수하며 이렇게 항변했다고 한다. “우리의 가족제도가 가장 평화로운데 왜 참견하느냐?”라고. 그러나 이런 사회는 먼 옛날 원시 씨족이나 부족사회와 같이 正分合에 있어서 부정(分)을 거치지 않은 긍정(正)이기에 하느님의 창조목적이 아니며, 또 씨족이나 부족사회는 ‘자기들만을 하나로 알기에’ 결국 씨족이나 부족끼리 다툼이 생 겨 ‘모두가 하나라는 하느님의 창조목적에 부합하지 않다. ’
- ♧ : 부정 (分)을 거치지 않은 긍정 (正)이라? 한 때는 홍위병들도 이 제도를 없애려 했고….
- ♣ : 이렇게 인간에게는 남녀가 만나 번식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으나. 남녀가
- 1:1로 만나 살아가는 가족 제도야말로 소우주 인간의 앎이 ‘모두가 하나라는’ 하느님과 같은 질로 성장하여 하느님 (神)과 하나 (合一) 되는 최선 (0) 이기에, 하느님은 성경 창세기에 남녀를 1:1로 등장시켜 일부일처제로 인류를 이끌어오신 것이다.
- ♧ : 에구구, 그런데 일부일처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네요.
- ♣ : 이 역시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이니, 첨예한 서로의 부딪침을 긍정적 기회로 받아들일 때, 깨달음은 극대화(0)되어, 그만큼 하느님(神)과 하나 됨(合一)의 질량은 깊고 넓다. 과일도 일교차가 커야 적응하느라 최선(0)을 다해 독특한 맛과 향기가 나듯이, 단풍도 일 교차가 커야 적응하느라 최선(0)을 다해 빛깔이 진하고 아름답듯이, 너희들도 마찬가지 이다. 삶에 첨예한 부딪침이 많으면 치열한 최선(0)이 나와 하느님(神)과 하나(合一) 됨의 질량이 깊어져 독특한 지복(至福) 희열이 나타난다. 완전(0)하신 하느님 자체인 이 우주 에 공짜란 없기에.
- ♧ : 아이구, 두야!
- ♣ : 왜 “아이구 두야!”냐?
- ♧ : 그런데 지복 (至福)에 이르는 두 가지 방법은 어떻게 된 거예요?
- ♣ : 어? 이제까지 이야기한 건데 모르겠냐? 남녀가 만나 아이 낳고 알콩달콩 살며 하느님과 같은 질의 앎이 되면, 그 체험하고 느낀 정도에 따라 지복 (至福) 희열이 나타나는 것이다.
- ♧ : 그러면 이제까지 하신 이야기가 모두 그 이야기예요?
- ♣ :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