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완성 – 59. 앎의 단계적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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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구일째 날

사회통념을 벗어난 앎의 단계적 성장

  •  : 어제는 하느님과 인간의 전지 (全知 ) 전능(全能 )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제는 죄의식 (罪意識 )에 관해 이야기했지? 
  • ♧ : 네, 그랬지요. 
  •  : 아이가 무지 (無知)로 태어나듯이 인류도 초기에는 얼마나 무지 (無知)했는지 이야기했다. 
  • ♧ : 네, 그랬지요. 
  •  : 초기 인류는 그토록 무지 (無知)했기에 눈에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 ♧ : 그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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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래서 하느님의 인류 앎 성장 과정도 처음에는 천사가 인간의 눈에 직접 보이게 부활해 나타나 활동했으니,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기적과 예언으로 인간의 눈에 직접 보여주는 외적(外的) 시대였기에, 인간 앎의 성장 과정 역시 ‘외적(外的) 규제의 율법 시대’였다. 문자(文字)로 예를 들면, ① 실물을 그림과 똑같이 그려 보여야 알아들었던 상형문자(象形文字) 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류의 앎이 한 단계 상승한 신약시대는 눈에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약속을 믿음’으로 이해하는 내적(內的) 믿음시대였다. 
  • 그렇기에 신약 과정은 “무조건 믿어라! ”, “안 보고 믿는 것이 더 잘 믿는 것이다. ”라 고 했으니, 마태오 9장 22절, 마르꼬 5장 34절과 10장 52절, 누가 8장 48절과 18 장 42절에 보면,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오고, 마태오 17장 20 절 14장 30~31절, 요한 20장 29절, 갈라디아 3장 25~26절, 로마서 1장 17절, 9장 8절, 3장 28절, 5장 1~2절, 3장22절 등은 모두 오직 믿음을 강조하였으니, 이것은 신약시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약속을 믿는 ‘내적(內的) 규제의 믿음시대’였기 때문이 다. 그렇기에 신약시대를 문자로 예를 들면, ② 상호간에 설정된 약속을 믿는 설형문 자(쐐기문자=楔形文字) 시대에 해당한다. 이렇게 외적(外的) 규제 구약과 내적(內的) 규제 신약은 제로(0)를 체험하는 것으로, 같 은 질이지만 외(外)와 내(內)로 상대적(分)이니, 외적(外的) 규제 구약은 외적(外的) 성공 이 성공이지만, 내적(內的) 규제 신약은 외적 실패가 곧 내적(內的) 성공이다. 그래서 십 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외적 실패는 내적 성공이었고, 너희들의 삶에서도 외적(外的) 실 패로 인한 시련과 번민은 내적(內的) 성공인 ‘깨달음 ’이 너희 영혼(핵)의 진화를 가져온다. 
  • 이러한 믿음 시대가 끝나면 지금까지 상대적 (分)으로 성장한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믿음’이 하나이며, 과학과 철학과 종교가 하나인 二分法正, 分, 合 원칙 시대가 되 니, 正, 分, 合 원칙은 하느님의 존재와 창조목적을, 
  • (1) 과학으로 입증하고, 
  • (2) 성서로 증거하며, 
  • (3) 생활에서 체험하며 확인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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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기에, 正, 分, 合 원칙 시대는 믿으라고 권고할 필요 없이 그냥 알려주면 되는 시대다. 왜냐하면, 누구나 正, 分, 合 원칙을 알면, 아는 만큼 하느님(神)과 뜻이 하나(合一) 되어, 닥치는 여건에서 순간마다 하느님(神)과 하나 됨(合一)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正, 分, 合 원칙 시대는 ③ 한글이나 알파벳 등 과학적 조립문자 시대에 해당한다. 
  • 그래서 신약성경 요한 16장 25절에 보면 예수도, “내가 지금까지는 이 모든 것을 비 유로 들려주었지만, 이제 아버지에 관하여 비유를 쓰지 않고 명백히 일러 줄 때가 올 것이다.”라고 하여, 때가 되면 하느님의 존재를 확실하고 뚜렷하게 눈으로 보듯 알게 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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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야, 그거 참! 인류의 지적 (知的)발달을 문자의 발달과 비교하니까 쉽게 이해되네요. 
  •  : 그러냐? 그런데 이렇게 성장한 인류의 지적 (知的) 수준을 단계적으로 분류하면 7가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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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시대] 
  • ① 개체성 진리 ② 눈으로 직접 보고 들어야 이해하는 기적과 예언시대 ③ 외적 행동규제의 율법시대 ④ 꼭 갚아 제로 (0) 를 체험하는 진리시대 ⑤ 육체적 혈육(씨족=이스라엘 민족) 관계로 이끈 시대 ⑥ 죄의식을 키워온 시대 ⑦ 상징적 희생시대(동물 희생) 
  • [신약시대]
  • ① 전체성의 진리 ② 눈으로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약속을 믿는 믿음시대 ③ 내적 행동규제의 복음시대 ④ 이해 양보로 제로 (0) 를 체험하는 진리시대 ⑤ 교단(영적 혈육)으로 이끈시대 ⑥ 죄의식을 부분적으로 없애는 시대 ⑦ 부분적인 실체적 희생시대, 
  • [二分法 正分合시대]
  • ① 개체성과 전체성 (0) 이 하나인 二分法正, 分, 合 원칙 진리 ② 과학과 성경(종교) 생활(철학)에서 체험하는 앎의 시대 ③ 여건에 따른 내적 외적 자율규제 시대 ④ 구약과 신약을 하나로 체험하는 二分法正, 分, 合 원칙 진리시대 ⑤ 모든 인간이 하느님 (神)과 하나 (合一) 되는 시대 ⑥ 죄의식을 완전히 없애는 시대 ⑦ 하느님 (神)과 하나 (合一) 됨을 완전 (0) 히 이루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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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예? 그것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분류되나요? 참 희한하네요? 그런데 왜 7가지씩이에요? 
  •  :數 7은, 하늘 뜻 數 3과 땅 실체 數 4가 합 (合=3+4=7) 한 數이기 때문이다. 數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곧 따로 있다. 
  • ♧ : 아, 그래요? 數에 대한 해설이 따로 있어요? 
  •  : 그럼, 正, 分, 合 원칙은 곧 과학이고, 물리학이며, 수학이니까. 그렇기에 하느님의 섭리는 모두가 數로 나타난다. 
  • ♧ : 아, 그래요? 
  •  :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 
  • ① 구약과정은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알아듣는 시대였음으로 선지자의 예언이나 천사가 인간에게 직접 나타나는 기적이 수없이 많았다. ② 그렇기에 구약과정 열매이며, 신약과정 씨앗인 예수는 기적과 예언을 너희에게 보였으니, ③ 이 능력은 표상(예수)으로 인해 인간을 하느님에게 이끄는 신약시대의 씨앗이 되었다. ④ 그 결과 성령들은 그 후에도 예수가 신격화되도록 인류역사를 유도하였으니, ⑤ 무지(無知)한 너희들 수준에는 예수가 하느님의 뜻 대리자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예수의 신격화나 초능력은 절대적이었다. ⑥ 그러나 신약과정은 기적과 예언이 아닌 믿음의 시대다. ⑦ 그 결과 신약과정의 열매이며,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시대의 씨앗은, 기적과 예언은 없고 오로지 앎뿐이다. 하지만, ① 正, 分, 合 원칙시대는 구약과 같은 기적이나, 신약과 같은 믿음의 시대가 아니고, ② 하느님의 3위1체 체질인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을 이해해(全知)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체험하는 시대이므로, ③ 새 진리인 正, 分, 合 원칙은 신약의 열매로든 새 시대의 씨앗으로든, ④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성령들이 필요를 느끼지 않아), ⑤ 기적이 일어날 필요도 없고(완전한 正, 分, 合 원칙이 있으므로), ⑥ 기적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①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시대 1,000년 과정이 지나 인류의 앎 성장 과정 7,000년이 끝 나면, ② 천사나 성령활동이 있었던 이제까지와 달리 인류에게는 오로지 二分法 正, 分, 合 원칙만이 있기에, 그때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또 이것은 새 진리 출현자나 모든 인간이나 똑같음을 입증하는 것이니, 누구든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을 알면(全知) 누구 나 똑같은 신(神)과 하나 됨(合一)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 시대 1,000년은 성령 협조는 있지만, 기적이나 표상 없이, 오직 완전(0)한 앎인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으로 개 개인이 하느님(神)과 하나(合一) 됨을 체험하는 시대다. 그래야, 새 시대 1,000년이 지나 고 하느님의 섭리가 역사기록으로 남아도, 미래의 인류는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혼 란이 없이’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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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二分法正, 分, 合 원칙의 흐름으로는 그렇겠네요. 
  •  : 그 결과, 지금까지 새 시대를 여는 영계핵의 영핵들은 무지 (無知)한 인간들의 수준에 맞 춰 구약 때는 천사로, 신약 때는 성령으로 기적과 예언의 능력을 보여왔다. 그것은 현대 까지도 사회통념이 되어 있으니, 같은 목사나, 교직자나, 신도라도 영적 능력이 큰 사람 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신약의 열매이며, 새 시대의 씨앗인 二分法正, 分, 合 원칙은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것같이 구름 타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통념과 같 이 기적이나 예언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현대 사회의 통념상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즉, ① 구약 말기 이스라엘 민족은 외적 (外的) 변화인, 국가의 독립과 부강을 가져올 지 도자를 메시아로 목이 빠지게 기다렸으나, 예수는 그런 사회통념을 완전히 벗어나, 개개 인의 내적 (內的) 변화를 가져오는 이해 양보 진리로 나타났으니, 그것은 유태인들의 절대 희망인 로마제국으로부터의 독립 국가와 부강 의지를 산산조각내는 재수 없고 저주받을 일이어서 걸림돌이 되었듯(성경 시편 118장 22~23절, 이사야 8장 14~15절) , 현대인들에겐 이것 이 또한 걸림돌이다. 이렇듯, 구약 말기에 출현한 신약이 그 당시 사회통념을 뒤엎는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② 신약 말기에 출현하는 二分法正, 分, 合 원칙도 현재의 사회통념을 뒤엎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성경 예언서 이사야 29장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는 놀랍고 기이한 일을 보이고(사회통념을 벗어난 예수의 출현) 또 보이리라(사회통념을 벗어난 正, 分, 合 원칙 출현) .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가 말라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가 말라 버리리라. ”라고 한 것이다. 이렇듯, 구약 때에 지식수준이 높았던 유태인 지도자들이 오히려 사회통념을 벗어난 예 수의 출현을 알아보지 못했듯, 이 시대에도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오히려 기존 관념 을 벗지 못해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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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 그러니까 결국 그렇다는 이야기군요. 구약 말기에 그랬으니 똑같은 과정을 가고 있는 신약 말기인 지금 역시 그럴 거라는 거네요? 
  •  : 그래, 그러나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은 참 진리를 알아보겠기에, 마태오 4장 28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라고 했듯이, 이 시대에도 진심으로 하느님 (神)과 하나 됨 (合一)을 원하는 순수한 사람들은 正, 分, 合 원칙을 알아보고 모 여들게 돼 있다. 그래서 새 시대를 여는 새 진리는 뿌리내리게 되어 있다. 
  • ♧ : 당연히 正, 分, 合 원칙이 새 시대의 새 진리가 맞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데 새 진리 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  : 그래, 그래서 새 진리가 나타나기 전에 그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들이 먼저 나타나 분위기를 잡아 놓는 거다. 
  • ♧ : 글쎄요? 당신과 대화해보니 지금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正, 分, 合 원칙을 알아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 그래서 성경 요한계시록 20장 4~6절에 보면, 새 진리를 알아보고 새 시대를 여는 사람 들을 ‘첫째 부활 제1 이스라엘(승리자)’이라고 했다. 
  • ♧ : 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인간은 누구나 전체 인류역사에서 각자가 맡은 퍼즐이기에 우열이 없다면서요? 
  •  : 당연하다. 그러나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은 二分法(상대적)이기에, ① 모두의 역할은 각자 가 맡은 퍼즐로서 가치가 똑같지만, ② 새 시대에 새 진리를 먼저 알아보고 체험함은 각 자에게 보람과 긍지와 기쁨이 있는 것이다. 
  • ♧ : 그러니까 二分法正, 分, 合이기에,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다는 건가요? 
  •  : 그렇지. 이 시대에 二分法 正, 分, 合을 먼저 알아보고 하느님과 뜻을 하나(合一)로 체험 하는 것은 각자에게 보람과 긍지가 되어 기쁨을 체험하는 충만한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 ♧ : 그러니까 결국 二分法正, 分, 合은 빼도 박도 못하게 돼 있군요. ♧ : 그렇다. 왜냐하면, 二分法 正, 分, 合 원칙은 상대적(分)이고 완전(0)하기에…. ♂ : 어휴! 오늘은 머리가 어질어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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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내친김에 하나만 더 하자. 신약성경을 보면 신약 초기 성도들은 하느님의 섭리가 앎의 성장 과정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 ♧ : 예? 신약 초기의 성도들은 하느님의 섭리가 앎의 성장 과정임을 알고 있었다고요? 
  •  : 그래,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 9~12절에 보면,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완전 (完全)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 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 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 게 알 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셨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 다.’라고 했거든. 
  • ♧ :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그걸 모른단 말이에요? 그거 참!